왜 이 뉴스가 단순한 폐업 소식이 아닌가
2025년 12월 말, 호찌민 인근 빈즈엉(Bến Cát) 산업단지에서 20년 넘게 운영돼 온 한국계 봉제기업 판코비나(Panko Vina)가 공장 운영을 종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정은 명확하다.
2026년 2월 1일부로 생산·영업 활동을 공식 종료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 외국계 제조기업의 철수 소식이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사건은 단일 기업의 경영 실패라기보다 베트남 봉제산업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특히 빈즈엉 공장은 판코비나 전체 생산 체계에서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

회사 공개 자료 기준으로 월 생산량 약 425만 피스, 170개 봉제라인을 갖춘 두 번째 핵심 생산기지였다. 그 공장이 문을 닫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판코비나, 무엇이 어떻게 정리되고 있나
판코비나는 베트남에서 약 23년간 봉제·의류 OEM 사업을 영위해 온 한국계 FDI 기업이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의류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신규 주문 확보에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결국 회사는 여러 생산 거점을 유지하는 방식 대신, 가장 규모가 큰 꽝남 공장으로 생산을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결과 빈즈엉 공장은 2026년 2월을 기점으로 운영을 종료하게 된다.
이번 조치는 급작스러운 ‘도주형 폐업’과는 거리가 있다.
회사는 2026년 1월 말까지 생산을 유지하고, 일부 부서는 1월 중순 이후 조기 종료하더라도 급여는 월말까지 전액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하지 않은 연차는 현금으로 정산하며, 이미 앞당겨 사용한 연차에 대해서는 급여에서 공제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법정 퇴직금과 별도로 1인당 200만 동의 추가 지원금 지급 계획도 포함됐다.
빈즈엉 공장이 선택된 이유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왜 하필 빈즈엉이었을까.
빈즈엉은 베트남 남부 제조업의 핵심 지역이다. 인프라와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도 크다.
봉제산업은 자동화 비중이 낮아 주문이 줄어들 경우 라인 유지 자체가 곧바로 손실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정리하는 것은 ‘두 번째로 큰 공장’이다.
소규모 테스트 라인이 아니라, 일정 규모를 유지해야만 돌아가는 중간급 생산기지다. 판코비나의 빈즈엉 공장은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이는 곧 회사가 단기적인 수주 회복을 기대하며 버티는 국면을 이미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봉제 수요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현재 구조에서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 앞섰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과 행정의 개입이 보여주는 단계
이번 사안의 또 다른 특징은 호찌민시 노동연맹과 관련 행정기관의 신속한 개입이다.
노동연맹은 판코비나 근로자 약 2,700~3,000명을 대상으로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설(뗏) 전후 지원 대책과 재취업 알선 계획을 공식화했다.
어려운 형편의 근로자에게는 1인당 100만 동의 설 지원금과 귀향 교통비가 제공될 예정이다.
동시에 인근 지역 동일 업종 기업들과 연계해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이러한 대응은 분쟁이나 임금 체불로 인한 긴급 개입이 아니다. 오히려 ‘폐업이 확정된 이후,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관리 국면’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노동 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임금·사회보험 체납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베트남 봉제산업, 회복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뀌고 있다
이번 사례를 두고 베트남 봉제산업이 위기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과거와 같은 방식의 봉제 산업은 더 이상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인력을 기반으로 한 단순 봉제 라인은 주문 변동성에 지나치게 취약하다.
반면 자동화 비중이 높거나, 소량·다품종 대응이 가능한 공장, 혹은 특정 브랜드에 깊이 연동된 생산기지는 상대적으로 버티고 있다.
판코비나의 빈즈엉 공장 철수는 봉제산업이 사라진다는 신호라기보다, 어떤 형태의 공장이 먼저 정리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 중이다.
마무리하며
이번 판코비나 사례는 기업 뉴스이자 동시에 산업 뉴스다. 한 한국계 기업의 결정이지만, 그 배경에는 글로벌 의류 수요 변화, 비용 구조, 생산 거점 재편이라는 보다 큰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제조업을 바라볼 때 이제는 단순히 ‘공장이 남아 있는가’보다, 어떤 구조의 공장이 살아남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코비나 빈즈엉 공장 철수는 그 질문을 던지는 사례로 오래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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